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신자가 속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16). 스스로에게 속아 주를 위해 한다고 한 일이 자기
영혼을 죽일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 속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첫째
오직 하나님만 선하심을 받아들이고 자기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온갖 좋은 것과 온전한 것은 전부 다 빛들의 아버지께로만
말미암습니다(17).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삼위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것은 전혀 선한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류에
대해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롬3:12).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선을 변함없이 행할 수 있는 인간은
성육신하신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자기 눈에 얼마나 좋아보이느냐 재미있느냐 합리적이냐 사람들이 인정해주느냐 혹은
그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깊이가 있느냐에 상관없이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뜻에 배치된다면 그것은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자기 욕심임을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만 믿고 마음에 안드는 것을 거부한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당신
자신입니다. 사실 참된 신앙은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된 접이란 예수님을 구주(SAVIOR)가 아니라 주님(LORD)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리 신자가 열정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적극적으로 봉사한다 하더라도 주님 고백이 아니라 구주
고백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스스로 속지 않지만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에게 속게 되어있습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여야합니다(17).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온전한 형상으로 빚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왕상3:9). 듣는 마음은 요시아 왕처럼 말씀 앞에서 마음이 연약해지고 통곡하는 겸손한사람에게 임하는
마음입니다(대하34: 21-27).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든 안들든, 이유를 알든 모르건, 힘이 들든
쉽든 상관없이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섬김과 예배입니다. 사실 예배라는 단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가는 길에
처음 사용한 것입니다(창22:5). 한편 스스로 속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간단한 자가진단법이 있습니다. 말이 많고 혀를 재갈물리지 못하면
반드시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약1:19,26). 그러나 반대로 영혼에 기쁨과 사랑 자유와 단순함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걷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