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7. Grace Church Message 朴祥栄宣教師
砂漠がさふらんのように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는 주님
The Lord who makes the desert to be blossom like the lily
(本文)イザヤ35:1-2
1. |
荒野と、かわいた地とは楽しみ、さばくは喜びて花咲き、さふらんのように、 |
1. The desert and the parched land will be glad; the wilderness will rejoice and blossom. Like the crocus,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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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旷野和乾旱之地必然欢喜;沙漠也必快樂;又像玫瑰开花, |
하나님은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백합화(lily)는 성경에서 주로 아름다움을 나타날 때 쓰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백합화처럼 아름답지 못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마6: 28) 백합화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을에 신록을 드러냅니다. 겨울 비를 맞고 자랍니다. 그리고 초봄에 향기로운 꽃을 피웁니다. 혹은 성경은 백합화(white lily)를 슈산 쇼산나로 부릅니다.
백합화는 그리스도를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의 보아스와 야긴 기둥의 꼭대기는 백합화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왕상7: 22) 주님의 교회의 기둥이요 머리가 되십니다. 또한 물두멍 바다는 역시 그 테두리를 백합화의 조각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왕상7: 26) 주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으시는 것입니다.
백합화는 또한 그리스도의 보호와 양육을 나타냅니다. 백합화 한 송이를 아름답게 키우듯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하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서(Isaiah)의 주요 메시지는 ‘구원은 여호와의 것이다’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이름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서는 다른 선지서는 모두 합쳐서 7회밖에 나오지 않는데 구원이라는 단어가 26번이나 나옵니다.
이사야 서는 당시 남 유다와 그 주변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됩니다. 이사야 서는 성경 중 가장 사랑 받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성경은 BC700년경의 이스라엘 사회와 문학적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정치적으로나 영적인 혼란기에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BC722 앗시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아시리아의 공격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정치적 영적 혼란 가운데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전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구원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특히 이사야 53장의 예언은 십자가의 주님의 고통과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선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는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1.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은혜의 계획가운데 나타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가나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칫상은 갑자기 큰 문제를 당한 것입니다. 포도주는 서로의 교제를 위해서 기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그 도구가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는 무엇보다도 전보다 더욱 맛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위기는 항상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인내하며 주님의 뜻을 묻고 깨닫고 순종하면 더욱 향기로운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식탁을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잔이 넘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시23: 5)
우리가 은혜를 받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요1: 16)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요1: 17)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가 은혜 받을 근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지금은 주님의 구원이 누구에게나 그를 믿는 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고후6: 2)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풍성한데로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십니다. (빌4: 17) 그리고 예수님이 지배하는 나라는 단기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왕 노릇하며 그 나라는 무궁할 것입니다. (눅1: 33)
(사35: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의 백합화 같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를 백합화같이 향기롭게 만드십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행복을 추구했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날 우물가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의 삶은 다시 기쁨을 화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다시 기쁨으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을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isostom)은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죄의 무게를 알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위대함을 압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향기를 회복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롬8: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께서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모든 독을 제거하고 냄새를 제거하고 승리하게 하는 분이십니다. (민21: 9) 광야에서 힘든 현실과 하나님을 불평하면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 뱀이 나아와 물었습니다. 독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라고 했습니다. 놋 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독에서 해방되어 살아났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저주의 독을 가지고 인간을 공격합니다. 현실만을 바라보며 불안해 할 때에 인간은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다 볼 때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는 승리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저주가 이르지 않도록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다 나음을 얻습니다. 병자들이 그의 옷 가에 손을 대기만해도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막6: 56)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사막에서 배합화가 피어나듯 변화가 됩니다.
(사35: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십니다.
3.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와 같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다니 마을의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사랑하는 오라비를 여의고 얼마나 그 마음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고전12: 22)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습니다. (요11: 26)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뒤 안식일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님의 유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시체를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주님께서는 부활하셨다. 우리는 주님이 2000년 전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과 함께 거닐고 있었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을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습니다. (눅24: 26-3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와 같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4.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새롭게 만드십니다.
니고데모는 국회의원이었고 학자였고 이스라엘의 존경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남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는 영으로 거듭날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요3: 3-5)
하나님의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도 성령으로만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고전2: 9-11) 하나님께서는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비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상령으로 그 약속의 땅을 믿고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주십니다.
(사35: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5.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 자는 그 축복에 참여합니다.
벳세다 언덕에는 설교 후에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을 이미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이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주님이 이미 응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시련의 기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조금씩 만 먹여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바친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2마리로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를 믿고 나아가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합니다. 또한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요6: 6-35)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6: 29)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체험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갑니다.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안식에 들어갑니다. 사막이 백합화처럼 변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사35: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6. 예수님은 그 은혜를 받는 확실하고도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에게 온전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대체물이 되지만 아무것도 그리스도를 대체할 것은 없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이 이 앉은뱅이를 낫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에게 다른 어떤 것을 더하면 안됩니다. 혹은 예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대체시켜도 안됩니다. 혹시 천사가 나타나서 다른 복음을 전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갈1: 8-9)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