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주께서 영육간에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기도와 사랑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바라끼현 시모츠마의 성도님들의 믿음과 청년부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서 기도부탁드립니다.
동경 오다니바의 성경공부와 하치오지의 성경공부가 은혜롭게 진행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기를 기도부탁드립니다. 또한 월 1회 동경 오차노미즈의 예배가 동경의 전지역에 복음을 확산시키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동경근교 후나바시에서 박상영 선교사 올림
2016.7.17.Grace Church Message 朴祥栄宣教師
苦しみの日には砦になる主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
The Lord who is a refuge in times of trouble
(本文)ナホム1:7
7. |
主は恵み深く、苦しみの日には砦となり/主に身を寄せる者を御心に留められる。 |
7. |
The LORD is good, a refuge in times of trouble. He cares for those who trust in him, |
7. |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산성(fortress)은 적의 공격에 대한 견고한 요새로 산 위에 쌓은 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안전한 장소를 상징합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산성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시9: 9, 시18: 2) 그러나 아무리 강한 산성이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성은 무너집니다. 인간의 산성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면 홀연히 멸망이 오게 됩니다. (암5: 9)
오늘 나훔서는 나훔이 기록하였습니다. 연대는 B.C.650년경입니다.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었습니다. 엘고스는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의 유다 남부의 한 도시였습니다.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여 심판이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훔은 이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사실 니느웨는 아무도 파괴시킬 수 없는 강한 요새였습니다. 성벽 높이는 26m이고 그 두께는 3대의 전차가 나란히 갈수 있는 넓이였습니다. 성벽에 52m의 높은 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벽둘레에는 24m의 넓이와 15m의 깊이의 해자가 둘러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포위되어도 20년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훔은 이 성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불법과 우상숭배 교만이었습니다. 나훔은 니느웨가 범람하는 물로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이 도시를 멸망시킬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은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티그리스강의 범람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그 틈을 바벨론의 군대가 침략하여 니느웨는 멸망하였습니다.
아무리 강한 성이라도 멸망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피난처 시요 산성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십니다.
여호와는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이 성경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까?
❀1. 불안하고 위험한 순간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불안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맞을 때 우리는 보이는 것과 가진 것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우선 현실적으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은 어느 정도의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란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항상 움직이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의 보배와 오빌의 금을 강가에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다이아몬드를 강에 던지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에 그렇게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써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전능자가 너의 보배가 되고 귀한 은이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욥32: 24-25) 전능자가 우리의 다이아몬드가 되면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시23: 4)
❀2. 영적인 전쟁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에게 결정적 승리를 주십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물을 바치며 예배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이 예배 드리는 이곳에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눈과 귀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예배 드리는 그곳에 있습니다. (대하7: 15-16) 구약시대 속죄 제와 화목제의 피는 바로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곳에 하나님의 마음은 있습니다. 그 피는 우리의 죄를 다 용서했고 우리를 대적하는 불리한 증서들을 다 파기시켰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무기를 다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골2: 14-15)
❀3. 아픔과 상처 속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아프시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욥5: 1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중에 헤맬 때에 때로는 채찍을 드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불쌍히 여기듯 그 손으로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킨 영은 우리의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죽을 몸을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십니다. 극심한 질병이 성령의 역사로 신비롭게 낫는 것을 우리는 종종 체험합니다. 물론 약을 사용하거나 적절한 운동과 좋은 환경을 통하여 병이 낫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도와서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4.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아들의 영을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갈릴 리의 한 산에서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뵈웠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항상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항상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서는 안됩니다. (마28: 18-20) 우리가 받은 영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닙니다. 종들은 로마시대에 종종 물건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은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릅니다. 아들도 징계의 채찍을 맞을 수 있었겠지만 아들은 먼저 아들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상속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가운데 거하는 사람입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각별한 보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입니다. 아들은 심지어 종들에게 명령하는 권세도 가집니다. 사단이 유혹하거나 공격할 때에 아들의 영을 가진 사람은 사단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롬8: 15)
❀5. 예배가 없는 삶 가운데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자기에게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했습니다. (요4: 2-3) 신령과 진정은 간단히 말하면 성령의 임재 가운데 그리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을 찾으십니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며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택함을 받고 은혜를 받은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힘입어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엡1: 5-6)
❀6. 소망과 기쁨이 없는 삶 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피로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하십니다.
어두움과 절망가운데 헤매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주의 진리와 주의 진리를 보내주셔서 주의 성산과 주의 장막과 하나님의 단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면 결국 극락의 하나님께 다다를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언약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높은 죄의 담이 쳐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았던 죄의 담을 허물어버렸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엡2:12-14)
❀7. 연약한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면초가의 어려움의 처지에 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서남북을 바라볼 때 원수들에 둘려 쌓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맛있는 식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맛있는 식탁은 잔이 넘치는 포도주가 함께 합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주님의 우리의 일생을 향한 계획이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성령의 기름으로 머리에 부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동행하시는 삶이여 말로 가장 축복받은 삶입니다. 바울은 심각한 가시와 같은 육체의 고통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그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오히려 우리가 약해질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고후12: 9) 내가 지금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사실 조금만 바꿔서 생각합시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의 약한 현실을 통하여 더욱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환란 날에 우리의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