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이기는 은혜 박상영 선교사 samuelparkj@yahoo.com
목차
들어가는 글
Grace 1.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1.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2.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뭅니다.
3. 피할 길을 주십니다.
4. 온전케 하십니다.
Grace 2. 하나님은 시련 중에서 어떻게 일하십니까?
1. 우리를 값없이 의롭게 만드십니다.
2. 예수님은 시련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십니다.
3. 시련 중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4. 하나님은 시련가운데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십니다.
Grace 3. 하나님이 시련을 통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십니다.
4.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5.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십니다.
6.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는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Grace 4. 우리는 왜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안에 계신 이는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시련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 시련 중에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Grace 5. 하나님은 왜 우리 삶에 시련을 허락하십니까?
1.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2.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꿈을 지키는지를 알기위해
3. 사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알게 하기위해
4. 우리를 풍부한 곳에 들이기 위해
5.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위해
6.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들어가는 말
동북대지진의 피해지 방문
일본은 2011년 3.11 동북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난후 우리는 볼런티어 구조팀을 조직하여 이와테켄 미야꼬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동경근교인 나가레야마에서 미야꼬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남이 가지 않은 곳을 가자는 마음으로 지진피해를 입은 최북단 미야꼬시를 택했습니다. 미야꼬시는 이와테 현의 중심인 모리오까시에서 동쪽으로 국도로 100Km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아침 일찍 나가레야마를 출발하여 센다이에 들려서 피해상황을 보고 다시 북상하여 밤이 되어서야 이와떼현 모리오까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리오까교회의 선교관에서 일박을 한후 아침 8시에 모리오까의 교회를 출발하여 가파른 산길을 2시간여 동쪽으로 달렸습니다. 끝없는 계곡과 능선을 지나 우리는 미야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미야꼬항은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항구중 가장 북단에 있는 항구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가는 거의 망가져 있었고 아직 신호등도 복귀되지 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오츠치 지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오츠치는 미야꼬시에서 1시간30분정도를 남쪽으로 해변 길을 달려서 도착했습니다. 가는 도중 동쪽에는 너무나도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언제 쓰나미가 있었냐는 듯 펼쳐져 있었지만 서쪽 해안에는 지진과 쓰나미의 무서운 가공할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집들과 불탄 검은 건물들이 널려져 있었습니다. 생선과 어쩌면 유체의 썩는 냄새들이 코를 찔러 차의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갈매기 떼들이 이곳의 슬픔을 대변하듯 까악 깍 울며 해변을 떼 지어 산란하게 날고 있었습니다. 배들이 쓰나미로 높은 언덕 도로 위까지 올라와 도로 펜스에 어지럽게 걸쳐 있었습니다.
지원물자 전달활동
오오츠치 지역에서는 먼저 신학생들과 팀을 이뤄 지원물자를 각 가정을 방문하여 전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마을은 아직 쓰나미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집이 대부분 1층은 망가진 채로 있거나 폐가가 되어 있지만 어떤 집들은 청소를 겨우 마치고 2층에 들어 사는 집도 있었습니다. 볼런티어로 온 사람들이 집을 청소해 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리는 물품을 가지고 그들의 집을 노크하여 그들에게 전해주며 사랑의 위로의 말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해준 물품은 쌀과 사과 귤 배등 과일 주머니였습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차를 상실하거나 엔진에 진흙이 들어가 사용할 수 없어서 시장에도 자주 갈 수 없었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직장을 잃어버려 생활 수단이 망막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품을 큰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만난 사람들
우리는 위로품을 그들에게 전달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혹은 소망을 끝까지 잃지 마십시다하며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또 어떤 집들은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아저씨는 모든 것을 잃고 피난소로 피하였는데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추운 바닥에서 지내었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아내를 잃었다고 슬픔에 잠겨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지진이 일어난 순간 마을에 경고방송이 시작되었는데 곧 전기가 단절 되는 때문에 경계방송이 중단되었지만 쓰나미가 올 것이라는 직감을 하고 즉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을 뛰쳐나와 달려서 항구의 강어귀에 있는 다리위로 올라갔는데 5분정도 후에 쓰나미가 들이닥쳤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외치며 쓰나미 위를 흘러갔지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도 힘도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한 집을 방문했는데 할머니가 마침 가미다나 앞에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의 인상은 어두움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교회에서 왔다고 하면서 위로품을 전달하였습니다. 할머님의 얼굴이 밝아지는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할머님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건강을 주의하세요 하면서 그 할머님을 위로하였습니다.
오오츠치 유치원 방문
위로품을 오오츠치 마을을 골목마다 거니며 오후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우리는 오오츠치의 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유치원의 원장님을 만나러 우리는 피난소를 들렀고 피난소에서 원장님이 친절하게 우리를 유치원으로 안내했습니다. 이 유치원은 바닷가 저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쓰나미가 와서 유치원의 큰 건물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원아중 9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살아난 원아들을 상대로 다른 장소를 얻어 6월중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남은 학용품 약 60박스 전부를 새로 개원하는 이 유치원을 다닐 어린이들과 그 부모님들을 위해 전해드렸습니다.
쓰라린 상처들
일본은 2011년 3.11 동북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일터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쓰나미에 휩쓸러 갔습니다.
부부가 쓰나미에 휩쓸러 가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보고도 남편은 힘의 한계 속에서 아내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쓰나미로 인해 부모님들을 다 잃고 고아가 된 자녀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사랑하는 노 양친이 쓰나미로 인해 휩쓸려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가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보고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의 아내나 남편은 얼마나 그 마음이 쓰라렸겠습니까?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도 구하지 못한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회한의 심정이 깊게 마음에 상처를 남겼겠습니까?
후쿠시마의 방사능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과 확산된 방사능의 재해를 통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정든 고향과 가정과 직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그곳에서 거둔 곡식이나 과일이나 낙농의 고기나 우유 등을 먹을 수 없고 판매할 수 없는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일본은 또 다시 더욱 큰 수도권 직하형 지진과 동남해의 쓰나미 후지 산의 화산폭팔의 위험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 요나서에 보면 박넝쿨 잎사귀 하나도 벌레 한 마리도 주님이 주장하시는데 이러한 미증유의 재난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시련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새롭게 일어설 수 있을까요?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는 기쁨을 잃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현대문명의 허구를 깨닫게 한 재난
일본의 이 대 재난과 시련들은 단순히 몇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 문명과 삶과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거대한 쓰나미에 크고 작은 많은 배들과 수많은 자동차들이 낙엽처럼 떠내려가고 육중한 콘크리트 제방들과 빌딩들과 공장 헤아릴 수 없는 가옥들이 힘없이 무너지며 바닷물로 뒤덮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생을 땀 흘려 모은 자산들이 쓰레기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대지진후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흔들어대는 여진이 있었습니다. 이 여진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서 있을 수 없는 곳이며 언젠가는 곧 무너져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지금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신뢰할 수 없는 허상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귀중성과 가정의 행복의 귀중성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진정 추구해야할 절대가치를 향해서 달리고 있느냐하는 의문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현대 문명의 이기들 즉 원자력이나 첨단 도시 문명이 오히려 우리에게 재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문명 종말의 서곡?
그것은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문명에 취해서 방향을 상실하고 달려가고 있는 많은 지구촌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북지역의 부품공장들이나 직하형 지진을 앞둔 동경의 수많은 빌딩들과 사업체 그리고 3000만의 밀집된 인구는 사실 현대문명의 상징처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남해지진이 일어날 경우 밀려 올 쓰나미에 파손될 도시들과 가옥 그리고 수십만의 인명의 피해를 생각할 때에 이것은 어쩌면 인류문명의 종말의 서곡 앞에 선 우리자신을 느끼기도 합니다. 동경 권에 일어난 이러한 재해들이 상해나 북경,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런던이나 파리나 서울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의 의미는?
그리고 이 시련들은 과연 이 시대 이 재난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문명이 가야할 방향은 어느 곳인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더욱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 본질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 존재의 근원의 문제이고 창조주와 절대자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문제임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
그런데 이러한 재난과 시련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가야할 방향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재난은 인간의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하고 더욱 밝히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환란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깨닫고 참된 소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의 참 맛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은 구름과 폭풍이 없이는 무지개가 생길 수 없습니다. 포도가 밟혀서 부서지지 않으면 포도주가 나올 수 없습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압력이 없이는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개인의 삶과 인류의 역사에는 때때로 많은 시련이 닥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시련은 오히려 은혜와 축복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시련 극복의 비밀
동북 대지진 후 어떻게 이 괴멸된 마을과 도시를 다시 일으킬 수있을까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해결책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건물의 파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쓰나미와 방사능으로 직접 상처를 입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은 일본의 사회 전체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직접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만 사실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은 대다수의 일본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동북대지진후 많은 가족동반 자살자들이 나온 것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비밀은 무엇일까요?
시련을 이기는 은혜인 성경
나는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은혜는 다른 어느 책보다 성서 속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성서는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하여 가장 많은 사람이 읽었던 베스트셀러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통하여 시련 중에서도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삶의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성서는 시대를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수많은 과학자 사업가 정치가 사회 운동가 예술가 소설가 교육가 신앙인들에게 힘과 소망과 은혜를 주었습니다. 성서는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주와 자연 생물 인간에 대하여 그 기원과 그 창조된 참 목적에 대하여 어느 책보다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고 지금도 운행하시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천지를 창조하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처럼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을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보다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인간의 자잘못을 알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한 성경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육신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성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질문
그중에서도 인간의 시련과 관련된 다섯 가지의 질문을 살피기를 원합니다. 즉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시련 중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지? 하나님이 시련을 통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 왜 우리는 시련을 이길 수 있는지?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지? 이러한 중요한 테마를 통해서 시련을 이기는 하나님의 감춰진 은혜를 성서를 통하여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시련을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것입니까? 먼저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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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1.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WHAT IS GOD'S PLAN FOR US THROUGH THE TRIAL?
試錬を通して神様の計画はなんで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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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구운 꽃병
영국의 조지 왕이 한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꽃병들은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고, 같은 스타일과 무늬로 만들어졌으나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또 하나는 흐릿한 빛을 낸 채 아주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 묻자 관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전시한 것입니다."
'고난의 불'은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빛나게 합니다.
유산
미국에 있을 때에 제가 잘 아는 한 일본인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결혼을 조금 늦게 한 편인데 남편은 변호사이고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러 집을 방문하면 첫 아이를 갖는 기쁨이 부부사이에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유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경에 계시는 목사님이신 친정아버님이 암으로 소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가정에 깊은 슬픔과 시련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주님이 기쁨을 회복시켜주시리라 믿으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 자매님은 동경에 계시는 친정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귀국하였습니다. 상당한 기간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저녁에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자매님의 남편 되는 분한테서 온 전화였습니다. 상기된 목소리로 딸을 출산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 가정을 방문했을 때 새 아기를 주신 주님께 대한 더 깊은 감사와 기쁨이 가정에 넘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1. 예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THE LIFE OF JESUS ARE REVEALED
キリストの命が現れます
[HAN 고후 4:8] CORINTH. コリン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NIV 고후 4: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HAN 고후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NIV 고후 4:9]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HAN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NIV 고후 4:10]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시련과 은혜
독일의 한 남작이 자기 성곽의 두 탑의 끝을 여러 가닥의 철사 줄로 연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 줄들에 바람이 부딪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거대한 바람 하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대기가 잠잠하고 조용했으므로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부드러운 미풍이 불기 시작하여 그는 한 가닥의 가냘픈 음악 소리들이 바람 하프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화음이 울린 것은 겨울날 거센 폭풍이 그 줄들을 휘몰아칠 때였습니다. 그럴 때는 장엄한 음악이 탑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그 아래 골짜기를 가득 메우곤 하였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폭풍이 가장 거셀 때 울려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우리는 실제 삶에서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폭풍이 혹심하게 몰아칠 때 우리는 흔히 가장 풍성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만일 이러한 고난이 우리들의 삶의 줄들을 부딪칠 때가 아니면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승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불행한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쓴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삶에 불어 닥치는 폭풍에 시달려 지쳐 있습니까?
그렇다면 외로운 싸움을 멈추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을 닮도록 이끄시게 하십시오. 시련과 고난은 그 역경의 폭풍이 당신의 삶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받게 하여 마침내 당신께 풍성한 성취를 안겨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옥의 저술
영국의 월터 렐라이 경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었을 때 입궁하지 않았다는 죄명 때문에 13년간이나 런던탑에 갇혀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까지 수감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역경을 기회로 삼고 저술활동을 펴 오늘날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남는 세계사를 집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빛나는 사도 바울의 책들을 보십시오. 그것은 대부분 감옥에서 혹은 나그네처럼 타국의 선교 활동 중에서 고생 중에 쓰인 것들입니다.
시련을 통해 나타나는 예수의 생명
시련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먼저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력은 평상시에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권능을 힘 있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욥이 깨달은 구원자
욥은 환란이 없을 때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시련을 당하였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불어 닥친 신앙의 큰 시험은 왜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시련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였습니다. 자신이 너무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큰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믿음이 좋다하더라도 자신은 형편없는 죄인이며 구원자가 필요함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의 경건을 기초로 하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의지하는 쪽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의 삶에 나타나기를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합니다.
시련은 우리를 자기의 능력이나 이성을 믿는 자기중심의 신앙에서 또한 인간이나 피조물을 믿는 우상숭배에서 혹은 막연한 권선징악적인 징벌하는 수많은 신들을 믿는 혼합된 신앙에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예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약속한 구세주입니다. 구세주가 약속데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죄와 저주 죽음의 원인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대리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아담의 갈빗대로 이브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요한 에덴 동산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에덴 동산이었지만 하나님께 만족하지 않고 악마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났습니다. 땅이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 가시가 엉컹퀴가 나는 광야로 쫒겨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땀흘려 일해도 만족할 만한 수확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결국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구세주를 약속하신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그가 택한 소수의 사람들 즉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계획은 장차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으로 인간을 죄에서 그 저주에서 악마에게서 죽음에서 구원하는 계획입니다. 구세주의 약속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구세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구세주는 베들레헴서 태어나며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태어날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자 이 구세주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약속된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영국의 황태자만 되어도 그 권한과 영광이 대단한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크게 말하면 세 가지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선한 목자
먼저 첫 번째로 모든 시련 가운데서 우리의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귀신의 점령을 당했던 사람에게서 귀신을 몰아내셨습니다. 또 혈루병 걸린 여인을 낫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해결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죄를 대속
두 번째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와 그 저주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영원히 완전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단을 멸하시고 부활하심
세 번째로 예수님은 시련중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사단을 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단은 가롯 유다에게 들어가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진 것 같으나 사실은 사단을 이겨 버린 것입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시므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죄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는 죄와 저주로 공격을 했는데 죄가 없어져 버리니까 공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무기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부활하며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심판 주로 머잖아 재림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오시는 성령님
그리고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우리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후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시면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너를 영원히 버리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예수님은 약속을 기다리는 120명 성도에게 마가 다락방에서 불과 같이 바람과 같이 임했습니다. 지금도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임재 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
성령님은 먼저 우리의 죄를 씻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영원토록 동행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해결하십니다. 우리를 채워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교회를 만들게 하시고 헌신된 일꾼으로서 봉사하게 하십니다. 전도하게 하시고 다른 민족에게 까지 나가서 선교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영원한 천국으로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십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비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시련중에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모든 죄와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성령님의 충만함과 임재하심 가운데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이를 위해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복음의 사실을 듣고 믿고 시인하면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영접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성령님으로 인치심과 충만하심을 받습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예정하시는 계획, 그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 지금도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나의 아집과 생각과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버리고 주님을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기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어떠한 환란과 시련중에서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도하시고 채워주십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주십니다.
감사 찬양
감사와 찬양은 우리의 삶에 주님의 임재가 넘치게 됩니다. 시련중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할 때에 우리는 시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의 삶이 창조된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인내
인내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내의 시간 일하십니다.
성령님과 관계없는 삶
예수를 믿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님을 강물로 비유한다면 우리는 강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강둑 위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강 뚝 위를 뛰어다니며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성령안의 삶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의 강물 속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강물이 발을 휘감기 때문에 자기 계획대로 살려고 하지만 은혜의 강물이 우리의 죄를 향한 발걸음을 잡아줍니다. 하나님께서 체크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이 더욱 더 우리의 삶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강물 속에 들어가 무릎까지 혹은 허리에까지 우리가 잠기는 것과 같습니다. 내 뜻대로 살기 원하지만 허리까지 찬 물이 나를 휘감아 나의 삶의 행보를 제한해 주십니다.
성령 충만한 삶
우리가 더욱 더 은혜를 받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 사는 것은 마치 흐르는 깊은 강물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헤엄을 치며 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려고 해도 결국은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흘러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삶을 주님이 예비하신 크신 계획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흐르는 강물같이 우리 삶을 완전히 휩싸서 인도하십니다.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기도하면 성령님이 임하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강물이 흐르듯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를 마침내 눈물과 애통하는 것이 없는 영원한 나라와 예수님 곁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련을 이기는 최대의 무기
‘밤이 어두울 때에 더 밝은 별을 본다.’고 에머슨은 말했습니다.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시련을 이기기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것, 주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는 시련을 이기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시련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생명의 성령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예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요 우리에게 밝히 드러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봤거늘 어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 중에서 어쩌면 멀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밝히 드러나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우리는 우리 가운데 모시고 있습니다.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이 구세주를 손으로 만지고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9-10)
2。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뭅니다.
CHRIST'S POWER RESTS ON ME
キリストの能力が弱いところに完全にあらわれます。
[HAN 고후 12:9] 2CORINTH. 2コリン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NIV 고후 12:9]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HAN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NIV 고후 12:10]
That is why, for Christ's sake, I delight in weaknesses, in
insults, in hardships, in persecutions, in difficulties.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3월의 강한 바람
식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3월의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나뭇가지가 마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에는 애처로울지언정, 그 강한 바람은 나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면서 새 잎을 내는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겨우내 활동 안한 나무줄기를 통하여 새싹 부분까지 원활히 잘 올라가자면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 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편한 생활만을 행복이라고 알고 지낸 사람의 일생에 인간으로서의 위대성이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위대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라면 인생길에 거센 바람을 맞아 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과 의지가 그 바람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 하는가? 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히 거센 바람에 당면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자녀들의 마땅히 가야할 길입니다.
가시는 은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것만 해결이 되면 나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기도하곤 합니다. 바울 역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몸에 가시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견디기 어려운 심각한 병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였던 바울이지만 세 번씩이나 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그 정도가 심각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 세 번이란 말은 횟수의 의미보다는 간절히 기도했음을 말합니다.
족한 은혜
그런데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고통으로 여겨졌는데 주님은 이 가시를 족한 은혜로 본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관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고난으로 생각하는데 주님은 족한 은혜로서 이러한 일들을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가 약할 때 온전하여 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거의 일어났습니다.
홍해 밑에 마련된 길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은 애급의 군대에 쫓기어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홍해라는 죽음의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을 생명으로 이끈 그 바다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애급의 병사들에게는 몰살당하는 함정이 된 것입니다. 광야 역시 이스라엘이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그곳은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맛볼 수 있는 은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위기는 기회
‘기회는 배를 타고 오지 않고 우리들 내부로부터 온다. 기회는 또 전혀 기회처럼 보이지 않고 불행이나 실패나 거부의 몸짓으로 변장해서 나타난다.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에 숨어 있는 문제를 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문제에 감추어져 있는 기회를 본다.’고 데니스 웨이틀리는 말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회가 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에게 닥치는 궁핍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함으로 바울을 더욱 강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스 섬에서 고독에 처했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미래의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더욱 맛있고 풍성한 포도주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곤란이 있더라도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시는 기회입니다. 한자로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위험은 곧 기회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기회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 12:9)
3. 피할 길을 주십니다.
GOD PROVIDES THE WAY
のがれる道を備てくださいます。
[HAN 고전 10:13] 1CORINTH. コリン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NIV 고전 10:13]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고난 뒤의 새로움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 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시험
‘독서는 충만한 사람을 만들고 기도는 거룩한 사람을 만들고, 유혹은 체험이 풍부한 사람을 만든다.’고 존 트랩은 말했습니다. 시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실 시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즉 시험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임재가 더욱 나타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또한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어서 능히 감당케 하십니다.
피할 길
‘우리가 처음에 시험을 만나면, 시험은 삼손 앞에서 으르렁거리던 사자와 같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시험을 극복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시험 속에서 꿀과 같은 달콤한 보금자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존 번연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앉아있던 48년 된 병자는 그 쓰라린 연단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2년간이나 혈루 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그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권능과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엘리야는 가뭄 중에서도 그릿 시냇가에서 물과 떡과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시내가 마르자 엘리야는 다시 사르밧 지방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를 자살 직전에서 구하고 영적인 구원은 물론 풍성한 기름과 떡의 축복을 함께 나눴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4. 온전케 하십니다.
GOD MAKES US FIRM AND STEADFAST
強めて下さいます。
[HAN 벧전 5:10] 1PETER. ペテロ。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NIV 벧전 5:10]
And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you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
고가의 바이올린 재료
바이올린 소리는 나무의 질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소리는 고산 지대의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해발 1만 2천 피트인 로키 산맥 꼭대기에서 바이올린 목재를 얻는데, 거기는 1년 내내 바람이 심하여 가지들이 한 방향으로 자랄 정도입니다. 고산 지대의 나무는 키도 클 수 없어 바람 때문에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추위와 바람에 오래 단련된 나무가 좋은 소리를 내서 고가의 바이올린 재료가 됩니다. 이 나무들은 고통 속에서, 바람 속에서 엎드려 견디며 대자연의 섭리에 순종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지혜를 익힌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강하게
카우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아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때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오를 만큼 강건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고난은 잠깐이고 은혜는 영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지만 그러나 사흘 만에 그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도 더욱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결국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줍니다.
요셉, 다윗, 모세의 고난
‘내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제껏 살아온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병석에서였다.’고 랄프 에스킨은 말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요셉은 쓰임받기 위해 많은 고난과 시련의 기간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기나긴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은 사실 그가 총리가 되고 받은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이름 없는 목동생활을 하였고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헤맸지만 그가 왕이 되고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받은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애굽의 궁궐의 왕자였던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양을 치며 지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그가 지루했겠는가가 능히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간을 통하여 가시떨기 나무사이에서 나타나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정도로 영적인 귀가 열려진 것입니다. 고난은 당할 때는 참기 어렵고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온전케하며 굳게 하며 강하게 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함께 기도하십시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우리는 망하지 않을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생명을 주신 예수님이 생명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줄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신 주님, 우리의 고난 중에 나타나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항상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머물기를 원합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게 족한 은혜를 부어주신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약함을 보고 실망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오리려 역사하시는 주님의 강함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시련을 피할 길을 주시옵소서.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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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말씀 중 느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2. 또한 관련된 체험을 나누어 주십시오.
3. 최근 주께 감사하는 것들을 나누십시다.
1. Who is God and what is God's grace in today's message ?
2. Share an experienced you had related to it.
3. Let's share something that we are thankful to God for recently.
1. 今日の御言葉の中で感じた神様はとのような方で神様の恵みは何てすか
2. 今日の御言葉と関係がある体験を話しましょう